Grieg / Peer Gynt Suites No.1 & 2 (페르귄트 모음곡 1, 2번), Geza Anda, Piano
Peer Gynt, Suite N°1, Op. 46
3. Anitra's Dance 〈아니트라의 춤〉
4막 6장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추는 춤곡이다.
매력적이고 산뜻한 작품으로 현악기와 트라이앵글이함께 조화를 이뤄 동양풍의 요염함이 돋보인다.
2막 6장에 연주되는 행진곡풍의 곡으로 동굴 속 마왕의 부하들이 춤을 추며 마왕의 딸을 페르귄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폭음이 폭발하면서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린다.
그리그는 이 곡을 “소똥 냄새가 나는 너무도 노르웨이적인 곡이다”라고 평했다.
Peer Gynt, Suite N°2, Op. 55
1. Ingrid's Lament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2막 전주곡으로 농장의 딸 신부 잉그리드를 약탈하는 주제가 관현악을 통해 격렬하고 야성적인 절규를 한다.
페르귄트는 신부를 약탈해 산으로 가지만, 곧 그 여자에게 권태를 느껴 새로운 꿈을 그리며 도망치게 된다.
처음에는 약탈을 묘사한 음악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의지할 데 없는 탄식을 묘사한다.
2. Arabian Dance 〈아라비아의 춤〉
4막 6장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이 추는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으로 마치 예언자처럼 가장하고 춤을 구경하면서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빠진 페르귄트의 심리를 묘사했다.
아라비아의 소녀들은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플루트와 탬버린이여, 기뻐 소리를 외쳐라”며 합창하며 춤을 춘다.
3. Peer Gynt's Homecoming 〈페르귄트의 귀향〉
5막 1장에 나오는 폭풍 치는 해안의 저녁이다. 페르귄트는 미국 금광에서 많은 돈을 벌었으나 귀국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부딪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만다.
4. Solveig's Song 〈솔베이지의 노래〉
4막에서 페르귄트의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심정을 노래한다.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아! 그대는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기다림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 널 찾아가노라.'
G?za Anda, Piano
Neeme J?rvi, Conductor
G?teborgs Symfoniker, Orchestra
Notes : Misprint, The cover credits the Berliner Philharmoniker and Karajan for the Peer Gynt Suites,
although it is the recording by the G?teborgs Symfoniker and Neeme J?rvi.
극작가 입센의 작품에 음악을 입힌 '페르귄트'는 돈과 모험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며 기적적인 모험을 겪는 페르귄트의 이야기로, 후에 귀향해 자신을 기다려준 솔베이그의 품에서 평화스런 죽음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그는 후에 이 극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4개의 작품을 뽑아 ‘제1모음곡’, 그 후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하였다.
그 8곡의 페르귄트 모음곡을 담았다.
건반 위의 음유시인 - Geza Anda (게자 안다)
게자 안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고전파와 낭만파 음악에 뛰어난 해석을 보였으며 특히 모짜르트 연주나 레코딩은 그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였으며,또한 베토벤,슈만,브람스,바르톡의 작품에서도 정평이 난 피아니스트였다.
전성기 때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톤,자연스럽고 흠 없는 테크닉,아름답고 유려한 선율은 누구도 쉽사리 흉내 내기 어려운 놀라운 세계였다.
게자 안다(Geza Anda)는 1921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와 졸탄 코다이, 임레 스테파니아니, 임레 케리-짠토 같은 명교수를 사사했고,1940년 리스트 상을 받으면서 졸업했다.
1941년,거장 빌헤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하면서 데뷔했다.
푸르트벵글러는 안다를 “피아노의 트루바두르(Troubadour:음유시인)”라고 칭찬했다.
1943년,안다는 스위스에 정착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매년 여름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 마스터클라스를 열었고,1960년엔 에드윈 피셔가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던 루체른 마스터클라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과 듀오 피아노 연주를 했고,그녀로부터 영향을 받아 후일 모차르트 연구에 몰입하게 된다.
이무렵 슈만의 피아노 작품 해석에 몰두하였고,바르톡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이 시대의 가장 으뜸가는 바르톡 해석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안다는 모차르트의 작품 연주에 매우 신중했다.
그 결과 초창기엔 어쩌다 한번 모차르트를 연주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모차르트 연구에 몰입하면서 그는 최초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진행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녹음 작업에서 안다는 독주와 지휘를 겸했다.
카덴차는 모두 안다 자신이 썼고,27곡의 모차르트 협주곡 중 16곡의 음반으로 그라모폰 상을 받았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서 머리와 가슴의 균형,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탐색하는데 바친 예술가였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마치 한 폭의 구상화를 보듯 그렇게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감상자들에게 다가 온다.
푸르트벵글러가 말했듯 안다는 피아노의 음유시인이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마치 사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미묘한 환상에 빠지기 일수다.
1970년,안다는 기사의 칭호와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1976년 6월 13일에 타계했고,3년 후 "게자 안다"콩쿠르가 개최되었다.
< 글/ Linda Grenn . 번역 / 김지혜 INTERNATIONAL PIANO . January 2004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