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성당에 나뒹굴던 폐석을 조각
성당에 나뒹굴던 폐석을 조각 피렌체 대성당 작업장에는
언제부턴가 큼지막한 대리석이 하나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피에솔레의 조각가 시모네가 결을 잘못 건드려서 중간 토막이
엉뚱하게 깨지는 바람에 그 뒤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골칫거리 폐석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시의회에 요청해서 그 대리석의 사용허가를 받았다.
버린 돌이니 만큼 공짜나 다름없었다. 이걸 잘 다듬어서
시의회가 주문한 조각작품을 만들 작정이었다.
문제는 폐석을 살려내는 일. 인간의 실수로 자연의 고귀한 가치가
훼손되어 버림받은 대리석의 운명에다 새로운 삶을 불어넣는 과제였다.
폐석을 살린다는 소문을 듣고 피렌체 사람들의 이목이 모였다.
미켈란젤로는 조수를 고용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번다한 구경꾼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작업실을 닫아걸었다.
“주위의 벽과 비계 사이에 칸막이를 둘러치고 쉼 없이 작업에 달라붙었다
.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안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작업이 끝났다. 칸막이를 걷어내자 폐석은 간 데 없고 늠름한 청년이 서 있었다.
다윗. 단신으로 골리앗을 죽이고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이스라엘의 소년 영웅이다.
시민들은 공청회를 열어서 의견을 모은 끝에 다윗을 시청사 광장에다 세우기로 했다.
조각작품은 조각가 상갈로가 특수하게 제작한 수레에 실어서 날랐다.
수레가 광장을 통과할 때 시민들은 예술의 기적을 목격했다.
시청사 입구에 세워진 대리석 다윗은 단숨에 도시의 상징이 된다.
제자 바사리는 스승의 삶을 정리한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만큼 짧은 시간에 볼품없는 돌덩이를 기적의 예술로 바꾸어놓았으니
그 솜씨는 하느님과도 맞설만하다.” 다윗 조각의 운명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527년 공화파와 메디치가 갈등하면서 다윗 상이 애꿎게 봉변을 당했다.
왼팔이 분질러져 나가고 몸통도 여러 토막이 났다.
제자 바사리가 훼손된 대리석을 눈치껏 수습해두었다가 훗날
코시모 1세의 도움을 받아서 가까스로 복원했다.
현재 장소 아카데미아로 옮긴 건 1872년.
<노 성두의 고전미술현장-미술사가 노성두 > 글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