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미켈란젤로

YS벨라 2011. 7. 19. 15:14

벨라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살아생전 신으로 불렷던 그의 작품 창조 과정에
 
고난의 연속이었던 그의 생을 
 
"다큐"와 함께 재조명 합니다

 

                                                                                     Mose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상을 마치고
 나무망치로 무릎을 치며 입을 열라 하였듯이
살아있는 듯  그도 만족감을 표하였다한다
 
그는  신의 손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영상 크게보기(흰여백)  > 재생후 마우스 우측 > 모두표시
 
 

 
 
 

Bacchus, begun 1497, marble sculpture,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Florence.
 



 
The Madonna of the Stairs, Casa Buonarroti, Florence.
 
 

Pieta, 1499, marble sculpture, Vatican.
 
 
그의 나이 불과 24세의 작품,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성모가 죽은 청년 예수를 안고 있다.
 
어린 모습의 성모의 얼굴은 지엄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을 안고 있으면서
 
 눈물은 커녕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David, 1504, marble, Galleria dell'Accademia at Florence.





    David (rear view), 1504, marble, Galleria dell'Accademia at Florence
     
     
      이 작품은 피렌체인에게 당시 위기를 맞은 공화국이
      지향하는 자유를 상징 하는 것으로 여겼다.
      구약성서에는 15세 가량의 어린 소년이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처럼 건장한 근육질이어야만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사 신의 기적이 있어도 이는 정신적인 것에 불과 하다.
      그보다는 초인적인 의지와 지혜,
      그리고 체력을 갖춘 "인간 다비드" 야말로 만들 수 있던 기적이다.
      그래서 이 위대한 조각가는 다비드를
      가장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로 조각했다.
    에피소드-성당에 나뒹굴던 폐석을 조각

     

     

    성당에 나뒹굴던 폐석을 조각 피렌체 대성당 작업장에는

     언제부턴가 큼지막한 대리석이 하나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피에솔레의 조각가 시모네가 결을 잘못 건드려서 중간 토막이

    엉뚱하게 깨지는 바람에 그 뒤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골칫거리 폐석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시의회에 요청해서 그 대리석의 사용허가를 받았다.

     버린 돌이니 만큼 공짜나 다름없었다. 이걸 잘 다듬어서

    시의회가 주문한 조각작품을 만들 작정이었다.

     

    문제는 폐석을 살려내는 일. 인간의 실수로 자연의 고귀한 가치가

    훼손되어 버림받은 대리석의 운명에다 새로운 삶을 불어넣는 과제였다.

    폐석을 살린다는 소문을 듣고 피렌체 사람들의 이목이 모였다.

    미켈란젤로는 조수를 고용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번다한 구경꾼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작업실을 닫아걸었다.

     

     “주위의 벽과 비계 사이에 칸막이를 둘러치고 쉼 없이 작업에 달라붙었다

    .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안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작업이 끝났다. 칸막이를 걷어내자 폐석은 간 데 없고 늠름한 청년이 서 있었다.

     

     다윗. 단신으로 골리앗을 죽이고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이스라엘의 소년 영웅이다.

    시민들은 공청회를 열어서 의견을 모은 끝에 다윗을 시청사 광장에다 세우기로 했다.

     조각작품은 조각가 상갈로가 특수하게 제작한 수레에 실어서 날랐다.

    수레가 광장을 통과할 때 시민들은 예술의 기적을 목격했다.

    청사 입구에 세워진 대리석 다윗은 단숨에 도시의 상징이 된다.

     

     제자 바사리는 스승의 삶을 정리한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만큼 짧은 시간에 볼품없는 돌덩이를 기적의 예술로 바꾸어놓았으니

     그 솜씨는 하느님과도 맞설만하다.” 다윗 조각의 운명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527년 공화파와 메디치가 갈등하면서 다윗 상이 애꿎게 봉변을 당했다.

     왼팔이 분질러져 나가고 몸통도 여러 토막이 났다.

    제자 바사리가 훼손된 대리석을 눈치껏 수습해두었다가 훗날

    코시모 1세의 도움을 받아서 가까스로 복원했다.

    현재 장소 아카데미아로 옮긴 건 1872년.

     

    <노 성두의 고전미술현장-미술사가 노성두 >  글에서 인용



     
      오페라 "성모의 보석" 간주곡 1번 / Wolf Ferrari
      (이탈리아,1876~1948)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갤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난숙 수채화   (0) 2011.07.19
♡ 너 참 많이 보고싶어   (0) 2011.07.19
꽃 그림 (유화)   (0) 2011.07.19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미술품들   (0) 2011.07.19
앙리 마티스 감상   (0) 2011.07.19